A. 최은경 편집기자는 사람의 기억에 끝까지 남는 것은 결국 다정함이라고 설명합니다. 무뚝뚝했어도 늘 웃으며 맞아주던 시아버지는 떠난 뒤에도 사무치게 그립지만, 다정함을 느끼지 못한 친정아버지에게는 그리움이 없었다고 돌아봅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가족에게 다정해지려고 노력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글의 출발은 산책길이다. 최은경 편집기자는 좁은 길에서 파란 경량 패딩에 검은 바지를 입은 마르고 피부색이 검은 어르신을 스치다가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고 쓴다. 시아버지를 닮은 모습에 '아부지 닮았네'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고 한다. 그는 시아버지를 '아부지'라 불렀는데, 시아버지보다 정감 있고 친정아버지와도 구분되는 호칭이라 좋았다고 설명한다.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는 10년이 넘었지만, 그를 닮은 사람을 봐도 마음에 동요가 없었고 장례식 이후 그리워한 적도 없다고 최은경 편집기자는 말한다. 그래서 아부지를 떠나보낸 뒤의 감정이 더 낯설다고 한다. 시댁과 한동네에 살며 20년을 보냈고, 산책길에 우연히 만나면 아부지는 "벌써 한 바퀴 걷고 오지, 딸은 어디 간대?" 하고 반기며 손을 훠이훠이 흔들어 배웅했다.
아부지의 빈자리는 일상의 장면마다 확인된다. 최은경 편집기자는 아부지 없는 추석, 가족 외식, 김장, 큰애 졸업식, 생일, 설, 여행, 시댁을 하나씩 떠올리며 그때마다 둑이 터지듯 눈물이 솟는다고 쓴다. 집에는 흔적이 남았지만 손을 잡고 눈을 맞출 사람이 없고, 남편과도 말을 꺼내기 전에 눈물이 나 마음을 나누지 못한다. 그 그리움의 이유를 따져 보니 결국 '다정함'이 남았다고 한다.
반면 친정아버지와의 기억은 달랐다. 그는 독서실로 데리러 오거나 늦은 밤 골목에 마중 나온 적이 없고, 용돈과 생일 선물도 받은 기억이 없으며 결혼식 행진 연습도 하지 않았다고 적는다. 자신도 아버지가 바란 딸이 아니어서 상냥하게 말하지 않았고 최소한의 도리만 했으며, 상처받지 않는 쪽을 택해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둘의 관계를 서로 닿지 않는 종이컵 전화기에 비유한다.
그래도 짧은 화해의 순간은 있었다고 한다. 첫아이를 낳고 3개월 만에 복직했을 때 엄마가 한국에 없어 아버지가 매일 아침 집에 와 수유 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 아이를 봐주었고, 울면 안아서 재웠다. 최은경 편집기자는 이 시간이 아버지와 술병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지낸 유일한 순간이었으며, 찰나였지만 그 덕에 이 글을 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돌아본다.
아부지는 무뚝뚝했지만 얼굴에 늘 웃음이 있었고, '왔어?' 하며 상현달처럼 웃어 주었다고 한다. 하지 마라, 안 된다는 말 대신 됐다, 괜찮다, 아깝다고만 했다. 이를 떠올린 최은경 편집기자는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말이 진화뿐 아니라 자기 삶에도 맞는다고 느끼고, 아이들과 이웃, 동료, 친구, 남은 가족에게 다정해지겠다고 적는다.
| 확인한 수치·기준 | 원문 내용 |
|---|---|
|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 6개월 넘음 |
|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 10년 넘음 |
| 시아버지와 며느리로 지낸 기간 | 20년 |
| 첫아이 출산 후 복직 시점 | 출산 3개월 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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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답은 최은경 편집기자·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가 베이비뉴스에 쓴 칼럼 「아버지에겐 없고 아부지에겐 있던 것」을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원문 칼럼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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